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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국내저자 >

이름:도종환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4년,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 (천칭자리)

직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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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024 누리과정 사회관계 필독서 세트 - 전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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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산에서 보내는 편지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이 문장은 숲에 있던 내가 사막에 있는 내게 던지는 물음입니다. 자주 목이 마르고 불안하고 지쳐 쓰러질 것 같은 하루를 살고 있다면 사막에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앞사람을 따라가지만 이 길이 맞는 길인지 모르겠고, 길에서 낙오하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득차 있다면 사막에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어디가 길인지 모르겠고, 길을 잃을 때가 많은데 도처에서 모래바람 같은 것이 몰려와 눈을 뜰 수가 없다면 그대도 사막에 있는 것입니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살립니다. 떡갈나무 연초록 잎이 내쉬는 숨결이 내 안에서 내 생명의 일부가 되어 나를 살아 있게 합니다. 그늘을 만들어주고 열매를 주며 지친 몸을 쉬게 해주고 영혼의 거처를 만들어줍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게 합니다. 그게 숲입니다. 우리가 삶을 시작했던 곳이 숲입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 그곳이 숲입니다. 폭염에 저를 버렸던 이파리가 두어 달 뒤 다시 푸르게 살아나는 곳도 숲입니다. 십일월에 끝난 듯싶었다가 사월에 다시 시작하는 곳이 숲입니다. 생명력이 살아 있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 조금 전까지 살아 있었는데 금방 죽음으로 변하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죽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사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 너 때문에 세상이 싫어지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살고 싶어지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황폐해지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풍요로워지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독한 사람이 되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선하게 변하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 그대가 있는 곳은 숲입니까? 사막입니까? 절판된 책을 다시 내는 이유도 그대가 사막에 있다면 다시 숲으로 오시도록 부르고 싶기 때문입니다. 2017년 이월의 숲에서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숲은 제게 청안(淸安)한 삶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숲에서 청안한 삶에 대해 배운 뒤부터 저의 인사법은 "청안하신지요?" "청안하시길 바랍니다." 하고 바뀌었습니다. 이 책에 있는 글이란 것도 사실은 그대가 청안하시기를 바라는 제 소망의 편린일 뿐입니다. 그대가 이 숲에 오신다면 청안하게 살고 싶어지실 것입니다. 지친 그대가 이곳에 오신다면 숲의 나무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나뭇잎을 흔들어 박수를 치며 그대를 받아줄 것입니다. 그대가 이곳에 올 때는 바쁜 걸음으로 산을 넘어오겠지만 돌아갈 때는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분주한 마음으로 제 문학의 숲에 오셨다가 고요해진 마음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대 혹시 사막에 계시지 않는지요? 한 손에 경전을 들고 일사불란하게 지도자를 따라가면서도 불안함을 떨칠 수 없어 다른 손에 무기를 숨겨둔 채 살고 있진 않는지요? 지켜야 할 수많은 계율이 있고 도처에 원수가 숨어 있으며 경쟁과 싸움을 피할 수 없어서 불안하다면 그대는 사막에 있는 것입니다. 숲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꽃잎의 말로 편지를 쓴다

시를 읽으며 한 주를 아름다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드리는 시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기쁨이 도고 위안이 되고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주일에 시 한편 읽는 것과 읽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없지만, 일년 동안 매주 시를 읽은 사람과 시 한 편도 읽지 않고 사는 사람의 정서적 문화적 깊이는 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십년이 된다면 삶의 질은 더 큰 차이가 날 것입니다. 시를 읽고 가까이하는 사람, 감동이 있고 설렘이 있으며 사람과 사물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니까요. 시 읽는 여러분으로 하여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내게 퇴휴(退休)의 시간이 없었다면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혼자 기뻐하는 시간도 없었을 겁니다. 말 없는 산 옆에서 안거에 들어 묵언하며 보내는 시간. 돈 내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새 소리, 방울벌레 소리, 물소리, 깊은 밤의 처연한 소쩍새 울음, 추녀 끝의 풍경소리,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청량한 바람, 그 바람의 맑은 기운과 천천히 깊은 사유로 안내하는 저녁 어스름. 그런 것들과 지낸 산방생활은 참으로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도 숲과 대지와 하늘과 들꽃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퇴휴(退休)의 시간 동안 무상으로 받은 것들을 여러분께 돌려드립니다. 산방에서 지내는 동안 숲에서 받은 맑고 환한 기운, 꽃과 새들이 가르쳐준 아름다운 사유가 여러분들께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밀물의 시간

시는 내 운명 맑은 가을 햇살 속에 앉아 있습니다. 가을 햇살 속에 앉아서 햇살이 하시는 일을 바라봅니다. 들판으로 내려가 낱알 하나하나를 금빛으로 칠하고, 아직 덜 여문 대추의 얼굴 한쪽을 조금 붉게 칠하고 잠시 물봉선 꽃술로 들어가 쉬시는 걸 봅니다. 내 시가 가을 햇살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너무 뜨겁지 않고, 너무 냉랭하지도 않고 그저 가을 햇살만큼만 맑고 다사로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 삼십 년 내게 시는 별 같은 것이었습니다. 문득 돌아보면 거기 있는 별 하나. 한낮에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어두워지면 천천히 돋아나는 별.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테니 너도 나를 떠나지 말라고, 돌아오는 밤길이면 나를 따라오는 별 하나. 쓸쓸해지면 보이는 별.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고, 빗줄기가 몰아쳐도 그 비가 지나가면 다시 거기 있는 별. 그 별처럼 시는 내 머리 위에 있었습니다. 내게 시는 바다 유리 같은 것이었습니다. 깨어진 병 조각에 지나지 않는 유리. 원망과 분노의 유리 조각에 지나지 않던 것이 수십만 번의 파도에 씻겨 작은 보석처럼 변한 것. 그런 바다 유리 같은 것이었습니다. 밀물의 시간과 썰물의 절망, 모순과 질곡, 딜레마와 트릴레마의 물결이 아니었으면 날카로운 단면들이 매끄럽게 다듬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내게 시는 가을 구절초 같은 것이었습니다. 봄 벚꽃처럼 일찍 눈에 띄거나, 장미처럼 품격 있거나, 능소화처럼 화려하지 않은 꽃. 고개 넘어가는 비탈에 보일 듯 말 듯 피어 있는 구절초, 들국화, 쑥부쟁이 같습니다. 나도 그렇고 내 시도 그렇습니다. 내세울 것도 별로 없고, 특별히 잘난 데도 없는 채 가을까지 온 꽃입니다. 촌스러운 꽃, 소박한 꽃, 보잘 것 없는 꽃입니다. 그러나 그저 이렇게 피어 산비탈 한쪽을 지키다 가는 것도 좋다고 믿는 꽃입니다. 지난 삼십 년 동안 불가능한 꿈을 꾸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고/(중략)/사랑이 손짓해 부르면 그를 따라야 한다고 말했고/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이길 수 없는 것들에게 싸움을 걸었고/판판이 깨지고 나서도 지지 않았다고 우겼고/(중략)/꿈꾸고 사랑하고 길을 떠나자고 속삭였”습니다.(졸시 「별을 향한 변명」) 그것들이 내 불행한 운명을 만들어 왔다는 걸 별은 압니다. 그 불행한 운명을 사랑하는 일. 그게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일이라고 시는 말합니다. 오늘 밤에도 별을 올려다봅니다. 여기까지 함께 와준 시에게 엎드려 절합니다. 2014년 10월

바다유리

바다유리를 책상에 놓고 늘 바라보면서, 남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유리조각이 보석처럼 바뀐 세월의 깊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쓸모없는 유리조각으로 버려져있던 바다유리의 절망의 날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 그러나 그 모든 날들을 딛고 다시 아름다운 보석처럼 반짝이며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 바다유리의 이야기를 이 땅의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

좋은 부모 되기 어려워 힘들 때 여기 이 시집에 있는 시 한 편 자식에게 건네주시면 어떨까요. 인생에 대해, 시련에 대해 말로 다 설명하기 버거울 때 여기 있는 시 한 편 자식들에게 읽어주세요. 어머니 아버지가 먼저 읽고 자식에게 전해주세요.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피고 지는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다 예쁘듯 나도 구태여 장미가 되려 하지 말고, 내 빛깔과 크기와 향기에 맞는 들꽃이 될 수만 있어도 좋겠다. 아직도 누군가 나를 꽃처럼 기억하고 사랑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지금 내 나이를 하루의 시간에다 견주면 몇시쯤에 와 있는 걸까요. 세시를 지나 다섯시 가까이 와 있는 건 아닐까요. 이제 저무는 시간만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내 생의 열두시 무렵은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지치고 병들고 적막한 시간이 이어지곤 했습니다. 머지않아 어둠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의기소침해하지 않기로 합니다. 아직도 몇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몇시간이 남아 있는 것을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황홀하고 아름다운 노을이 하늘 가득 펼쳐지는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순간순간 시에 충실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시가 늘 함께해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추천사를 써주신 최원식 선생님, 발문을 써준 배창환 형과 꼼꼼하게 교정을 보아준 편집부 여러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생이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2011년 여름

슬픔의 뿌리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자 했습니다. 나무가 되어 다른 나무와 섞여 숲의 일부가 되고자 했습니다.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 일말고 그저 개나리꽃처럼 피어 있고자 했습니다. 그늘진 곳과 햇볕 잘 드는 곳을 가리지 않고 본래 살던 곳과 옮겨 심은 곳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는 개나리꽃같이만 살고 싶었습니다. (...중략) 그러나 언젠가부터 쓸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적한 강 마을로 돌아가 외로워서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쓸쓸한 집 한 채 짓고 살고 싶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강물 소리를 들으며 강물 소리와 함께 조용히 깊어지고 싶었습니다. 언제쯤 그날은 올는지요.

접시꽃 당신

산굽이를 돌아서면 여기 우리들 오늘도 이렇게 살고 있다고 신호나 하듯 집집마다 저녁연기를 하늘로 올리고 별 하나 미리 나와 그것을 내려보다 하늘 한 자락씩 내려보게 올라오는 굴뚝 연기와 서로 만나게 하는 저녁입니다. 개울가의 나무들은 그림자를 물속에 조용히 담그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듣습니다. 먼저 돌아온 이들은 하늘에 걸린 별 하나를 보고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이들을 위해 등불을 내겁니다. 앞을 내린 들국화처럼 머리를 쓸어내리고 식구들을 기다리는 지어미의 모습이 보입니다. 뜨락에 내려 하루의 먼지를 털며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지아비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너무도 오래 저문 들판에 서 있었습니다. 차가운 손으로 차가운 얼굴을 문지르며 이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떨어져 있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봅니다. 이웃의 얼굴이 하나씩 둘씩 별처럼 떠오릅니다. 부끄러움을 잊으려고 시작한 일이 더욱 크게 부끄러움을 불러들인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나는 운명이라는 말 앞에 경건해지곤 합니다. 인생이라는 말에 숙연해지곤 합니다. 시를 쓰는 일이 운명을 사랑하는 일이기를 바랍니다. 시를 통해 내 인생을 진지하게 통과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시는 이미 내 운명입니다. 그러나 내 시가 너무 무겁지 않기를 바랍니다. 너무 고통스러운 언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암호이기는 더더욱 반대합니다.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할 수 있다면 고요하기를 바랍니다. 매화처럼 희고 고요하고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 개정판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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